달러는 정말 무너지고 있는가. 요즘 브릭스 언론을 뒤지다 보면 이 질문이 자꾸 되돌아온다. 러시아 TASS·RT,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한목소리로 “금이 오르고 달러가 진다”고 외친다. 나는 이 서사를 반쯤은 믿고, 반쯤은 걸러 듣는다. 오늘은 그 ‘반씩’을 정확히 나눠보려 한다 — 무엇이 진짜 무너지고 있고, 달러는 아직 무엇으로 버티며,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
금 매입은 ‘증상’일 뿐, 진짜 사건은 페트로달러의 균열
중앙은행들이 금을 쓸어 담는 건 사실이다. 세계금협회 설문에서 89%가 향후 1년 금 보유 확대를 전망했고, 준비자산에서 금 비중(약 27%)이 미국 국채(약 22%)를 1996년 이후 처음 추월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17~18개월 연속 사들여 2,313톤을 쌓았다.
그런데 나는 이 금 매입을 ‘질병’이 아니라 ‘증상’으로 읽는다. 진짜 사건은 그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페트로달러 체제의 균열이다. 반세기 동안 세계의 석유는 오직 달러로만 거래됐다. 그 ‘석유=달러’ 공식이 달러를 기축통화의 왕좌에 앉힌 진짜 기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둥에 금이 가고 있다. 오늘날 석유 거래의 약 80%는 여전히 달러지만, 나머지 20%가 달러 밖으로 빠져나갔다. 수십 년 전 ‘사실상 100%’였던 걸 생각하면, 이건 조용하지만 분명한 이탈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이란 전쟁이었다
이 균열을 결정적으로 키운 사건이 2026년 이란 전쟁이다. 여러 분석은 이 전쟁을 페트로달러 침식의 ‘명백한 촉매’로 지목한다. 왜 그런가. 전쟁이 끝난 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권을 사실상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 통행료(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와 석유 대금을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암호화폐)으로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테헤란 통행세 부스’다. 유로로 받는 경우도 나왔다.
한 가지 짚자. 흔히 “이란이 엔화나 금으로 석유를 판다”고 알려졌는데, 확인된 결제 통화는 위안화와 암호화폐다(금은 ‘금 기반 결제’라는 더 큰 흐름의 일부일 뿐, 이란 석유의 실제 결제 수단은 아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다 — 세계 원유의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에서, 달러를 거치지 않는 결제가 제도화됐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이렇게 읽는다. 전쟁은 역설적으로 이란의 지정학적 몸값을 올려놨다. 미국·이스라엘의 총공세를 견디고 협정으로 전쟁을 끝낸 이란은, 이제 호르무즈라는 세계 에너지의 급소를 쥔 ‘문지기’가 됐다. 여기에 중국이 이란 에너지·인프라에 1천억 달러 넘게 투자하며 뒤를 받친다. 물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잃은 대가도 컸으니 이란이 ‘완승’했다고는 못 한다. 그러나 비(非)달러 석유 결제의 최전선에 이란이 서게 된 건 분명하다. 그리고 다른 산유국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페트로달러의 입지가 좁아지는 시발점 — 나는 그 첫 도미노가 여기서 쓰러졌다고 본다.
관영 매체를 읽는 원칙 하나. 사실과 소망을 분리하라. ‘금 매입량’과 ‘위안 결제’는 사실이지만, ‘달러 붕괴 임박’은 그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소망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 소망이 여러 나라의 행동으로 쌓이면, 그것이 곧 현실의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러가치는 떨어지나 — ‘동참국이 늘면’ 그렇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달러의 가치가 장기적으로 떨어지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지금 당장 폭락한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동참국이 하나둘 늘어날 때’다. 기축통화의 힘은 ‘모두가 쓴다’는 관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한 나라가 석유를 위안으로 팔기 시작하고, 다른 나라가 준비자산을 금으로 바꾸고, 또 다른 나라가 양자 무역을 자국 통화로 결제하기 시작하면 — 각각은 작아도, 합쳐지면 그 관성이 얇아진다. 러·중 교역의 80% 이상이 이미 루블·위안으로 결제되는 것이 그 예다.
이건 눈사태의 첫 눈송이 같은 것이다. 한 송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산 전체가 미끄러진다. 달러의 지분이 80%에서 70%로, 다시 60%로 내려가는 그 완만한 곡선이 — 어느 순간 시장의 ‘기대’를 바꾼다. “달러는 영원하다”는 믿음에 균열이 가는 순간, 그 믿음으로 지탱되던 가치의 일부가 빠진다. 게다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잇는 국경 간 결제망 실험까지 더해지면, 달러 결제망을 우회하는 ‘기술적 샛길’도 넓어진다. 그래서 나는 브릭스 매체의 방향성만큼은 인정한다. 문제는 속도와 시점이지, 방향이 아니다.
이미 쓰러진 도미노를 세어보면 방향이 더 또렷하다. 러·중 교역의 80% 이상이 루블·위안 결제로 넘어갔고, 이란은 호르무즈에서 위안·암호화폐를 받으며, 브릭스 신개발은행은 현지통화 대출 비중을 3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인도와 아랍에미리트는 루피·디르함 직거래를 텄고, 걸프 산유국들도 위안 결제 도입을 저울질한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하나하나는 ‘예외’로 보이지만, 이 예외들이 늘어나 ‘관행’이 되는 순간이 바로 임계점이다. 나는 세계가 지금 그 임계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본다 — 다만 그 걸음이 몇 년이 아니라 십수 년 단위로 느리다는 게 함정이다.

하지만 — 달러는 아직 건재하다
여기서 반대편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방향이 맞다고 해서 ‘내일’이 아니다. 달러는 지금도 압도적으로 건재하다. 석유의 80%가 여전히 달러로 거래되고,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이 달러다. 무엇보다 달러를 대체할 마땅한 후보가 없다. 위안화는 중국의 자본통제 때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어 진정한 기축이 되기 어렵고, 금은 이자를 낳지 않고 대량 결제에 쓰기엔 무겁다. ‘유닛’ 같은 브릭스 금 기반 통화도 아직 구상 단계일 뿐이다.
역사도 이 균형을 가르친다. ‘달러의 죽음’은 사실 반복적으로 선고돼 온 예언이다. 1971년 닉슨이 금 태환을 끊었을 때,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 1999년 유로 출범 때, 2008년 금융위기 때마다 “이제 달러는 끝”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달러는 세계 무역·금융의 중심이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믿을 만한 자산’이어서가 아니라, 깊은 시장·풍부한 유동성·촘촘한 결제망이라는 네트워크 효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관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브릭스는 한 몸이 아니다. 인도는 위안화가 사실상의 기축이 되는 걸 결코 원치 않는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에서 총부리를 겨눈 사이다. 겉으로는 ‘탈달러’로 뭉쳐도, 그 대안이 ‘위안 패권’이라면 인도가 먼저 발을 뺀다. 적을 공유한다고 동맹이 되는 건 아니다. 달러를 밀어내려는 힘은 분명하지만, 그 힘이 하나의 대안으로 수렴하지 못하는 한, 달러는 ‘최악 중의 최선’이라는 자리를 지킨다.
달러가 가치를 되돌릴 방법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손 놓고 침식을 지켜만 볼까. 나는 달러가 가치를 되돌릴 카드가 아직 충분하다고 본다. 네 가지다.
첫째, 에너지 초강국이다. 미국은 이제 세계 최대 산유·산가스국이다. 자국이 석유를 팔 때 달러로 받는 한, 페트로달러의 한 축은 미국 스스로가 떠받칠 수 있다. 둘째, 가장 깊은 자본시장이다. 위기가 오면 세계의 돈은 여전히 미 국채로 몰린다. 이 유동성과 안전자산의 깊이는 하루아침에 복제되지 않는다. 셋째, 제재의 절제다. 역설적이지만, 달러를 무기로 남발한 것이 탈달러를 부추겼다. 그 무기를 아껴 쓰는 것 자체가 신뢰 회복의 시작이다. 넷째, 기술·AI 수요다. AI·반도체·첨단산업의 중심이 미국인 한, 그 생태계에 참여하려는 세계의 수요가 달러 수요로 이어진다.

결국 달러의 운명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관리’에 달렸다. 재정 규율을 지키고, 제재를 절제하고, 동맹을 신뢰로 묶고, 기술 우위를 유지하면 — 침식의 곡선은 얼마든지 완만해지거나 되돌려질 수 있다. 패권은 밖에서 무너지기 전에 안에서 먼저 곪는 법이다. 달러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미국이 재정을 방만히 굴리고 제재를 남발하며 정치가 분열하면, 대체재가 없어도 달러의 신뢰는 스스로 갉아먹힌다. 달러의 가장 큰 적은 위안화가 아니라 워싱턴의 자기관리 실패다.
한국과 투자자에게
우리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흥미롭게도 한국은행은 13년째 금을 사지 않다가, 최근에야 금 ETF 투자를 위한 계좌를 개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쌓는 흐름에서 한국은 오히려 뒤처진 쪽이었다. 준비자산의 성격상 신중할 이유는 있지만, ‘제재의 그림자’와 ‘페트로달러 균열’이라는 구조적 동인을 감안하면 이 뒤처짐을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일수록, 결제 통화가 다극화되는 세상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한 가지만 — 이건 권유가 아니라 관찰이다. 중앙은행의 꾸준한 매입은 금값의 ‘바닥’을 두껍게 받쳐주는 강력한 구조적 수요다. 그러나 그것이 곧 ‘금값 무한 상승’을 뜻하진 않는다. 금은 여전히 이자를 낳지 않는 자산이고, 실질금리·달러·지정학에 따라 출렁이는 사이클 상품이다. 브릭스 매체의 ‘달러 붕괴’ 헤드라인에 흥분해 고점에 올라타는 것과, 페트로달러가 왜 균열하는지를 이해하고 리스크의 한 층으로 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나는 후자의 시선으로 이 흐름을 본다.
내 결론 — 독점의 끝이지, 죽음은 아니다
정리하자. 지금 벌어지는 건 ‘달러의 죽음’이 아니라 ‘달러 독점의 끝’이다. 세계는 달러·위안·디지털화폐·금 기반 결제가 뒤섞인 다극(多極)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이 흐름에서 브릭스의 금 매입과 이란의 위안 결제는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방향은 탈달러가 맞다. 동참국이 늘수록 그 곡선은 더 또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방향이 종착지는 아니다. 달러는 무너지지 않는다. 대체재가 없고, 미국은 되돌릴 카드를 쥐고 있다. 그래서 나는 두 서사를 모두 절반씩만 취한다. 브릭스의 “달러가 진다”도, 서방의 “탈달러는 허상”도 각각 절반만 맞다. 정답은 그 사이 어딘가 — 달러는 왕좌를 지키되, 그 왕관은 예전만큼 무겁지 않은 시대다. 금은 그 얇아진 왕관 위에 조용히 얹힌 보험이고, 이란의 위안 결제는 그 변화를 알리는 첫 종소리다. 그 종소리를 ‘붕괴의 신호’로 들을지, ‘관리의 경고’로 들을지 — 그건 워싱턴에 달렸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확인된 사실과는 다릅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통행료(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와 석유 대금을 주로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암호화폐)으로 받고 있으며, 유로로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엔화·금 결제’는 정확하지 않고, 금은 ‘금 기반 결제’라는 더 큰 흐름의 일부일 뿐 이란 석유의 실제 결제 수단은 아닙니다. 핵심은 세계 원유 길목에서 ‘비달러 결제’가 제도화됐다는 점입니다.
장기적 방향은 하락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급락이 아니라, 석유를 위안으로 팔거나 준비자산을 금으로 바꾸는 나라가 하나둘 늘면서 기축통화의 ‘관성’이 얇아지는 완만한 침식입니다. 임계점을 넘으면 시장의 기대가 바뀌며 가치의 일부가 빠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시점입니다.
① 석유의 80%가 여전히 달러 거래,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이 달러입니다. ② 위안화는 자본통제로, 금은 유동성 부족으로 대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③ 브릭스 내부도 분열돼(인도는 위안 패권 거부) 하나의 대안으로 수렴하지 못합니다. 달러를 밀어내는 힘은 있어도, 대체할 통화가 없다는 것이 달러의 최대 방어선입니다.
네 가지 카드가 있습니다. ① 세계 최대 산유·산가스국이라는 에너지 초강국 지위, ② 위기 때 돈이 몰리는 가장 깊은 자본시장, ③ 달러를 무기로 남발한 제재의 절제(신뢰 회복), ④ AI·반도체 등 기술 우위가 만드는 달러 수요입니다. 달러의 운명은 외부 공격보다 미국 내부의 재정·정책 관리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