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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Global Situation  |  GLOBAL-SITUATION

부수지 않고 조른다 — 2026년 여름, 전쟁의 문법이 바뀌었다

📅 1330 KST — 2026.08.31
✍️ wjdwo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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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나간다. 8월 한 달의 국제정세 자료를 쌓아놓고 전선별로 정리하다가, 나는 어느 순간 정리를 멈췄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와 통상 마찰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사안인데, 세 장의 브리핑에서 같은 문장 구조가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더 많이 파괴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가 무엇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개별 전황이 아니다. 그 아래에 깔린 문법에 관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벌어지는 싸움들은 상대를 부수는 방식에서 상대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목을 쥐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 문법에서 한국이 어디에 서 있는지가, 이 글의 마지막 질문이다.

공급망 병목 세계지도 물류선이 몇 개 지점으로 모이는 개념도

세 전선, 같은 문법

중동. 6개월째 전쟁이다. 6월에 맺은 양해각서의 협상 시한을 양측이 모두 넘기면서 공식 휴전 틀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부처는 어느 도시를 점령했느냐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이 길목은 여전히 막혀 있고, 통과하는 배는 이란과 협의해야 지난다. 미국은 반년 가까이 폭격했지만 이 목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수단을 바꿨다. 재무장관이 “역사상 최대 금융 공세”를 예고했고, 은행·에너지·항공·암호화폐가 표적이다. 폭탄으로 안 되니 돈줄을 조르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통행 규정을 어긴 선박을 나포하겠다고 맞받았다. 브렌트유는 90달러대 중반에 머문다.

우크라이나. 여기서도 결정적인 것은 영토가 아니다. 도네츠크 남부에서 러시아군이 조금씩 밀고 들어가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대목은 우크라이나의 방공 요격탄 재고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키이우는 사흘 내내 경보가 거의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값싼 자폭 드론을 물량으로 밀어 넣어 비싼 요격탄을 소모시키는 방식을 쓴다. 목표는 도시 파괴가 아니라 재고의 고갈이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물류와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때린다. 서로 상대의 보급과 유통이라는 목을 조르고 있다.

통상. 여기는 아예 노골적이다. 캐나다산 제품에 추가 50% 관세가 걸렸고, 캐나다는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 보복관세로 응수한다. 강제노동 수입금지 제도를 도입했는지에 따라 관세율을 달리 매기는 방식도 등장했다. 시장 접근이라는 목을 조여 상대의 국내 제도까지 바꾸려는 설계다. 지난 1년 반 동안 협상 대신 보복을 택한 나라는 중국과 캐나다, 단 둘뿐이다.

세 전선의 무기는 다르다. 미사일, 드론, 관세. 그런데 겨냥하는 지점이 같다. 상대의 심장이 아니라 목이다.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목을 쥐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국 해경을 동원한 대만 봉쇄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는데, 이것 역시 상륙이나 점령이 아니라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중·러 연합 비행이 반복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제 교전이 아니라 통로에 대한 지분 주장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올해 상반기 대만해협의 군사적 압박 수위는 오히려 낮았는데, 미·중 정상이 만날 자리가 여러 차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목은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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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정보

부수는 데는 압도적 힘이 필요하다. 조르는 데는 길목 하나면 된다. 그래서 약한 쪽일수록 조르기를 택하고, 강한 쪽도 결국 따라간다.

왜 이렇게 바뀌었나 — 내 해석 네 가지

여기서부터는 자료가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네 가지가 겹쳐 이 전환을 만들었다고 본다.

첫째, 정밀무기의 역설이다. 미국은 최소한의 타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정밀할수록 비싸고, 비쌀수록 재고가 유한하다. 이번 여름 미국의 요격탄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왔고, 나는 이 문제를 앞선 글에서 따로 다뤘다. 요컨대 화력의 시대는 재고의 시대에 발목을 잡혔다. 값싼 드론 한 대로 수백만 달러짜리 요격탄을 뽑아낼 수 있다면, 굳이 정면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둘째, 세계화가 남긴 상호의존이 그대로 무기가 됐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효율을 위해 공급망을 길게 늘였다. 원유는 한 해협을 지나고, 반도체 소재는 몇 개 나라에서만 나오고, 결제는 몇 개 시스템을 거친다. 이 구조는 평시에는 저비용이지만, 유사시에는 어디를 눌러야 상대가 아픈지가 지도에 그려져 있는 상태가 된다. 상호의존은 원래 전쟁을 막는 장치로 기대됐는데, 실제로는 정밀 타격 좌표가 됐다.

셋째, 위쪽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핵을 가진 강대국끼리는 전면전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로의 요구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남는 공간은 전면전 아래층뿐이다. 해협 봉쇄, 재고 고갈, 제재, 관세, 인프라 타격. 전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서 아프게 하는 수단들이다.

넷째, 이게 정치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폭격은 뉴스가 되고 사진이 남고 여론이 움직인다. 그런데 관세, 제재, 통항 지연, 재고 고갈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없고 극적인 장면이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국내 정치의 부담 없이 압박을 계속할 수 있다. 조르기는 값싼 강압이다. 값싸기 때문에 오래 간다.

드론 대 요격미사일 교환비 크기 대비 개념 이미지

그런데 조르기는 이기지 못한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조르기가 만능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번 여름이 증명한 것은 조르기로는 승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란은 해협을 쥐고 있지만 봉쇄와 제재로 경제가 조이고 있고, 대통령이 직접 합의의 적기를 말할 만큼 지쳤다. 미국은 6개월을 때렸지만 해협을 못 열었고 재고만 축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방공을 고갈시키고 있지만 물류와 유통을 얻어맞고 있고, 전선은 마을 단위로만 움직인다. 관세를 매긴 쪽도 보복관세를 맞는다. 서로의 목을 동시에 쥔 상태에서는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남는 것은 교착이다.

그래서 나는 조르기를 승리의 전략이 아니라 지구전의 문법으로 읽는다. 결판을 내는 수단이 아니라, 결판이 나지 않는 상태를 견디며 상대가 먼저 지치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승패는 화력이 아니라 버티는 능력이 가른다. 재고, 재정, 대체 공급선, 그리고 국민이 불편을 얼마나 오래 감수하는가.

또 하나 짚을 것이 있다. 조르기에는 부작용이 따라온다. 목을 조이면 상대는 그 목을 대체하려 움직인다. 제재를 받은 쪽은 다른 결제망을 찾고, 봉쇄를 당한 쪽은 다른 항로를 뚫으며, 관세를 맞은 쪽은 다른 시장을 개척한다. 걸프 국가들이 최근 미국 바깥에서 자체 안보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즉 조르기는 단기적으로 아프게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를 자기 영향권 밖으로 밀어낸다. 목을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어느 날 그 목이 더 이상 급소가 아니게 된다.

이건 조르는 쪽이 반드시 계산해야 할 비용인데, 실제로는 잘 계산되지 않는다. 압박의 효과는 이번 분기에 나타나고 이탈의 대가는 다음 10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간표와 구조 변화의 시간표가 어긋나 있다.

그리고 문은 뒤로 열린다

조르기 교착에는 흥미로운 부산물이 하나 따라온다. 공개 외교가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8월 25일, 미국 CIA 국장이 예고 없이 모스크바를 다녀갔다. CIA 수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2021년 말 이후 처음이다. 그는 러시아 정보기관 수뇌부를 만나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합의하라”는 취지를 전하고 3자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방문 기간에 우크라이나에 모스크바 방면 타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크렘린은 회담 예정을 부인했으니, 이 대목은 아직 일방 보도로 두는 것이 맞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호르무즈 문제는 미국과 이란이 마주 앉아 푸는 것이 아니라 오만이라는 제3국을 통해 통항 항로와 관리 방식을 조율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심지어 통행료를 받을 별도 법인을 세우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읽는다. 목을 쥐는 싸움은 공개적으로 양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목을 놓는 순간 지렛대가 사라지고, 그 장면이 공개되면 국내에서 굴복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질적인 조정은 정보기관 채널과 제3국 중재라는 뒷문으로 옮겨간다. 앞문에서는 계속 강경한 말이 나오고, 뒷문에서 거래가 오간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올해 상반기에 오히려 낮아진 이유도 비슷하다. 정상 간 만남이라는 통로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앞문과 뒷문 외교 정문과 측면 문이 있는 복도

참모의 눈 — 그래서 한국의 목은 어디인가

이제 우리 이야기다. 이 문법이 맞다면, 국가의 안보를 점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예전 질문은 “우리는 얼마나 강한가”였다. 새 질문은 “우리는 어디를 조이면 아픈가”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조여질 목이 유난히 많은 나라다. 원유와 가스는 사실상 전량 수입이고, 그 상당수가 이번에 막힌 바로 그 해협을 지난다. 곡물도 대부분 수입한다. 반도체를 만들지만 소재·부품·장비의 여러 길목은 해외에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구조라 시장 접근이 곧 생존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이번 여름에 드러난 대로 요격탄 재고라는 목이 있다. 미국조차 자국 재고를 중동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우리가 쥔 목은 무엇인가. 솔직히 짧다. 고대역폭 메모리를 비롯한 일부 반도체 정도다. 그마저도 각국이 대체를 서두르고 있으니 영구적이지 않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는 조를 수 있는 목은 적고, 조여질 수 있는 목은 많다. 조르기의 시대에 이건 구조적으로 불리한 자리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세 가지라고 본다. 첫째, 목록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의 병목이 어디에 몇 개 있고, 각각 며칠을 버틸 수 있는지 숫자로 아는 것. 군에서 지속 가능 일수를 계산하듯이 국가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 둘째, 대체 경로를 미리 확보하는 일이다. 대체는 위기가 터진 뒤에 만들 수 없다. 비축과 다변화는 평시에 손해를 감수해야 생기는 자산이다. 셋째, 우리가 쥔 목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 하나가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강한 방어수단이 된다.

한국 컨테이너항만 에너지 야간 항만과 가스 터미널

내 결론 — 선포되지 않는 전쟁

정리하자. 2026년 여름의 세 전선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같은 문법을 쓰고 있었다. 부수지 않고 조른다. 이 방식은 값싸고 조용하며 오래 간다. 그리고 어느 쪽에도 승리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 내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이 문법에서 가장 경계하는 지점은 파괴력이 아니라 가시성이다. 폭격은 눈에 보이고 그래서 정치적 제동이 걸린다. 조르기는 보이지 않는다. 유조선 한 척이 며칠 늦게 도착하는 일, 요격탄 재고가 조금씩 줄어드는 일, 관세율이 몇 퍼센트 오르는 일에는 극적인 장면이 없다. 그래서 뉴스가 되지 않고, 뉴스가 되지 않으니 사회가 대응하지 않는다. 나는 앞선 글에서 공개돼 있는데도 읽히지 않는 정보를 다뤘는데, 이것도 같은 문제의 다른 얼굴이다. 중요한 것들은 대개 지루한 형태로 온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이 터질지를 묻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미 조여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세어보는 일이다. 선전포고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날 배가 늦게 오고, 값이 오르고, 재고가 비어 있을 뿐이다. 그때 놀라지 않으려면 지금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A

여전히 정상 통항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통과 선박은 이란과 협의를 거쳐야 하며, 이란은 통항 규정을 위반한 선박을 나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란과 오만이 통항 항로와 관리 방식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이란은 미국이 각서상 의무를 이행해야 시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브렌트유는 90달러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A

복수의 미국·우크라이나 매체가 보도했으나 크렘린은 회담 예정을 부인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8월 25일 방문해 러시아 정보기관 수뇌부와 만나 협상 재개와 3자 정상회담을 타진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공식 발표로 확인된 사안은 아니므로 현재로서는 보도 단계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A

네 가지 요인이 겹칩니다. 정밀유도무기는 비싸고 재고가 유한해 장기전에 취약하고, 세계화로 길어진 공급망은 어디를 누르면 아픈지가 이미 드러나 있으며, 핵보유국 간 전면전이 불가능해 그 아래 수준의 강압만 남았고, 무엇보다 이런 압박은 극적인 장면이 없어 정치적 비용이 낮습니다. 값이 싸기 때문에 오래 지속됩니다.

A

에너지의 사실상 전량 수입과 그 수송로, 곡물 수입 의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해외 의존, 수출 의존 구조에서의 시장 접근, 그리고 방공 요격탄 같은 전시 소모품의 재고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대체 불가능하게 쥐고 있는 품목은 일부 메모리 반도체 정도로 제한적입니다. 병목 목록화, 대체 경로 확보, 보유 기술의 우위 유지가 대응의 축이 됩니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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