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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았던 것 — 1941년의 경고와 오늘의 공개 서류

📅 1559 KST — 2026.08.15
✍️ wjdwo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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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8월, 뉴욕에서 영문 책 한 권이 나왔다. 제목은 『Japan Inside Out』, 우리말로 『일본 내막기』다. 요지는 단순했다. 일본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결국 미국을 칠 것이다. 반응은 냉담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 넉 달 뒤인 12월 7일, 진주만이 불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예언이 적중했다는 미담으로 읽지 않는다. 내가 오래 붙잡는 대목은 다른 데 있다. 미국은 정보가 없어서 당한 것이 아니다. 경고는 활자로 인쇄돼 서점에 놓여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읽지 않았거나, 읽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늘 나는 그 ‘믿고 싶지 않음’이라는 상태를,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공개 서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무엇이 들어와 있는지도.

1941년 서점 진열창에 놓인 책 한 권

1941년 — 경고는 있었고, 반응은 조롱이었다

책이 나온 시점을 다시 보자. 1941년 여름이다. 일본은 이미 1937년부터 중일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1940년에는 독일·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었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병력을 밀어넣고 있었다. 재료는 널려 있었다. 저자는 그 재료를 모아 결론을 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미국 사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 전쟁에도 참전하지 않고 있었고, 여론의 주류는 고립주의였다. 태평양 건너의 나라가 미국 본토를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는 대다수에게 과장이거나 선동으로 보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이 “미국인이 지금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했지만, 그 평은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진주만 이후 이 책은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됐다. 내용이 바뀐 것은 없다. 바뀐 것은 독자 쪽이었다. 같은 문장이 8월에는 헛소리였다가 12월에는 통찰이 됐다.

왜 안 믿었나 —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

여기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안 믿었을까. 나는 세 가지가 겹쳤다고 본다.

첫째, 거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전 직전까지도 미국은 일본의 주요 교역 상대였다. 고철과 석유가 태평양을 건너갔다. 상대가 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은 지금 이익을 보고 있는 관계를 부정하는 일이다. 사람은 자기 밥벌이를 부정하는 정보에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둘째,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결말을 가리키는 정보는 자연스레 ‘과장’으로 분류된다. 셋째, 화자가 약소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쪽의 경고는 대개 이해관계가 걸린 주장으로 취급된다. 그것이 사실인지와 무관하게.

세 가지 모두 정보의 양이나 질과는 상관이 없다. 수용하는 쪽의 조건이다. 나는 이것이 정보라는 것의 가장 불편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게 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더 뼈아픈 사실도 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외교 암호는 이미 해독되고 있었고, 워싱턴은 협상이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격의 시점과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하와이가 표적이 되리라고는 진지하게 상정하지 않았다. 정보 조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의 그림으로 조립해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옮기는 단계에서 막힌 것이다.

그러니 진주만은 첩보의 실패라기보다 판단과 상상력의 실패에 가깝다. 자료는 있었고, 심지어 서점에 경고서까지 나와 있었다. 부족했던 것은 “설마”를 걷어내고 최악을 진지하게 계산해 보는 일이었다.

ℹ️
참고 정보

정보가 무시되는 이유는 대개 그것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지금의 이익이나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서류 먼지 쌓인 문서 더미

공개 서류 — 이제는 외칠 필요조차 없다

여기서 시점을 현재로 옮긴다. 1941년에는 누군가 책을 써서 알려야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서류가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이라는 제도가 있다. 1938년에 만들어졌다. 외국 정부나 단체를 위해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주체는 등록하고, 반기마다 무슨 일을 했고 돈을 어디에 썼는지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신고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직접 열어봤다. 등록번호 3457번, 등록인은 China Daily Distribution Corporation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의 미국 법인이고, 주소는 뉴욕 브로드웨이 1500번지다. 최초 등록일은 1983년 4월. 올해로 40년이 넘었다.

2025년 5월에 제출된 신고서(대상 기간 2024년 11월~2025년 4월)를 보면, 반년 동안 본사에서 받은 돈이 약 489만 달러, 지출이 약 487만 달러다. 그리고 그 지출 내역이 항목별로, 월별로, 수령처 이름까지 적혀 있다.

공개 서류, 읽을 때 반드시 갈라야 하는 것

그런데 이 서류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오독이 가장 많이 나오고, 오독하면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고서의 지출 항목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광고비(Advertisement Expenses)다. 그 매체의 지면에 차이나데일리 측 콘텐츠가 실렸다는 뜻이다. 원문에서 이 항목으로 잡힌 곳은 파이낸셜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타임(Time), USA투데이다.

다른 하나는 인쇄비(Printing Newspaper-도시명)다. 이건 전혀 다른 얘기다. 차이나데일리 자기 신문을 그 신문사의 윤전기로 찍었다는 뜻이다. 신문 인쇄기는 하루 대부분 놀기 때문에 외부 인쇄를 수주하는 것은 업계에서 흔한 부업이다. 이 항목에 잡힌 곳은 보스턴글로브, 휴스턴크로니클, 시애틀타임스, 시카고트리뷴, 선센티널(마이애미), 하와이호치 등이다. 이 신문들은 자기 지면에 아무것도 싣지 않았다. 공장을 빌려준 것뿐이다.

이 둘을 뭉뚱그려 “이 신문들이 전부 중국 선전물을 실었다”고 쓰면 명백한 허위가 된다. 실제로 이런 오독은 자주 유통된다. 참고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양쪽 모두에 등장한다. 광고비도 받고 인쇄도 해줬다. 그러니 매체별로 갈라 읽어야 한다.

공개 등록부 문서보관 서류철이 늘어선 서가

지면에서 도시로 — 서류가 보여주는 변화

같은 서류에서 내가 더 흥미롭게 본 대목은 따로 있다. 정보자료 배포 수단을 적는 칸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계정 주소가 그대로 나열돼 있는데, 트위터 계정 하나에 더해 페이스북 도시별 계정 여덟 개가 적혀 있다. 뉴욕,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신문 지면은 전국 단위다. 반면 도시별 계정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지역 행사, 지역 커뮤니티, 지역 경제 소식의 얼굴을 하고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규모를 줄인 것’이 아니라 접점을 잘게 나눈 것이라고 읽는다. 큰 지면 하나보다 작은 접점 여덟 개가 더 촘촘할 수 있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공개 서류 에 적힌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지출 내역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광고비와 인쇄비 말고도 배송비, 임차료, 급여, 세금, 보험료 같은 항목이 월 단위로 빼곡히 적혀 있다. 배송비만 매달 20만 달러 안팎이다. 이건 캠페인성 지출이 아니라 상시로 돌아가는 조직의 운영비다. 한 번 크게 터뜨리고 빠지는 구조가 아니라, 40년 넘게 매달 같은 항목이 반복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나는 이 지점이 오히려 더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영향력 공작이라고 하면 은밀한 공작원이나 극적인 사건을 떠올린다. 그런데 서류가 보여주는 실제 모습은 훨씬 지루하다. 임차료를 내고, 직원 급여를 주고, 신문을 찍어 배송하는 일의 반복이다. 지루하기 때문에 뉴스가 되지 않고, 뉴스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전부 합법이다 — 이게 핵심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등록을 했다. 반기마다 신고서를 냈다.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배포한 자료의 사본을 법무부에 제출했고(신고서 21번 항목), 자료에 외국 대리인이 배포한 것이라는 표시를 붙였는지를 묻는 22번 항목에도 “예”라고 답했다. 심지어 정치활동을 했느냐고 묻는 12번 항목에는 “아니오”라고 적었다. 신문 배포와 광고 영업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몰래 숨어든 것이 아니다. 40년 넘게 공개적으로 등록하고, 규정대로 신고하며, 라벨을 붙여 활동해 왔다. 중국 측은 이를 정상적인 언론·출판 사업이자 문화 교류로 규정한다. 서구 언론이 자국에서 하는 활동과 다를 바 없다는 반론도 오래 제기돼 왔다. 나는 그 주장을 여기서 판정할 생각이 없다. 중요한 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서류를 읽는 사람 밤의 열람실 화면 불빛

1941년과 지금의 진짜 차이

이제 두 시점을 나란히 놓아보자.

1941년. 정보는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이 책을 써서 알려야 했고, 그 책을 찾아 읽어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2026년. 정보는 있다. 심지어 당사자가 스스로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고 공개한다. 검색창에 등록번호만 넣으면 나온다. 그런데 아무도 읽지 않는다.

차이는 접근성이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는 것이고, 같은 점은 결과다. 1941년에는 정보가 희소해서 못 봤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변명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개된 것을 안 보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음모의 고발로 쓰지 않는다. 감춰진 것을 찾아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다 열려 있는데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숨은 음모가 아니라 이 무관심 자체다.

참모의 눈 — 그래서 지금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1941년 그 자리에 지금 다른 나라가 들어선 것인가. 나는 단정하지 않는다. 1941년의 일본은 이미 전쟁 중이었고 군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등록된 신문사와 그때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사안의 성격도, 단계도 다르다.

내가 같다고 보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우리 쪽의 조건이다. 1941년 미국이 경고를 흘려들은 이유는 거래하고 있었고, 원하지 않았고, 말하는 쪽이 약소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세 가지 조건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있다. 우리는 최대 교역 상대와 거래하고 있고, 마찰을 원하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가 강대국 사이에 낀 쪽이다.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가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군에서 정보를 다뤄본 사람이라면 이 대목이 익숙할 것이다. 나쁜 소식일수록 위로 잘 올라가지 않는다. 보고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는 쪽이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능한 참모는 정보를 더 모으는 데 힘을 쓰기 전에 자기가 무엇을 믿고 싶어하는지를 먼저 점검한다. 그것이 필터의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습관은 공개출처정보를 다룬 글에서 정리한 검증 규율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내 결론

1941년의 교훈은 “일본을 경계하라”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믿고 싶은 것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구분하라는 것이었다. 그 교훈은 대상을 바꿔가며 계속 유효하다.

지금 우리 앞에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공개 서류 형태로, 훨씬 쉽게 놓여 있다. 어느 나라가 어느 매체에 얼마를 썼는지가 공문서로 공개된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그 서류의 존재조차 모른다. 1941년에는 외치는 사람이 필요했고, 지금은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 더 쉬운 일인지는 분명한데, 결과는 아직 같다.

그러니 오늘의 질문은 “누가 우리를 속이는가”가 아니라고 본다. “공개돼 있는데도 내가 읽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이 훨씬 불편하고, 그래서 훨씬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A

1941년 8월 뉴욕에서 출간된 영문 저작으로, 일본의 팽창이 결국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책입니다. 출간 당시 미국 사회는 고립주의 분위기 속에서 이를 과장으로 받아들였고, 약 넉 달 뒤 진주만 공습이 일어난 뒤에야 주목받아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이 출간 시점에 일독을 권한 평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

1938년 제정된 미국 법으로, 외국 정부나 단체를 위해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주체에게 등록과 정기 신고를 의무화한 제도입니다. 등록인은 반기마다 활동 내용과 수입·지출을 신고해야 하고, 배포한 자료에는 외국 대리인이 배포했다는 표시를 붙여야 합니다. 제출된 신고서는 법무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A

전혀 다른 항목입니다. 광고비는 그 매체의 지면에 등록인 측 콘텐츠가 실렸다는 뜻이고, 인쇄비는 등록인의 신문을 그 신문사 인쇄시설에서 찍었다는 뜻입니다. 인쇄만 해준 신문사는 자기 지면에 아무것도 싣지 않았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합쳐 읽으면 사실과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신고서를 볼 때 항목명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A

아닙니다. 해당 법인은 1983년부터 등록되어 있고, 반기 신고와 자료 사본 제출, 표시 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으로 신고서에 기재돼 있습니다. 즉 제도가 요구하는 절차를 따른 합법적 활동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문제도 위법 여부가 아니라, 그렇게 공개된 정보를 사회가 거의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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